추모내용 | 이건석은 1852년 경상북도 금릉군 봉산면 예지동에서 태어났다. 결혼 후 서울로 올라온 이건석은 유생의 신분으로 을미사변과 황제폐위 음모 사건에 대하여 상소를 올렸다. 러일전쟁 이후로는 자강의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. 아울러 일제의 보호국화 책동에 맞서 13도유약소를 설치하고 이토 히로부미[伊藤博文]에게 항의문을 전달하고 일진회의 선언서를 반박하는 변명서를 올렸다. 고종의 회유에도 상소 운동을 계속하던 이건석은 1904년 11월 17일 새벽 일본군에 의해 상소의 주모자로 다른 네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. 이건석은 옥중에서 건강이 악화되었으나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상소의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1906년 5월 10일 피를 토하고 순국하였다.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으며, 같은 해 11월 영동군의 황간역 앞에 ‘대한의사 이건석선생 기념비’가 세워졌다. |